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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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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건방진 눈초리.

내일 일찍 나가야 되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밤이 으시시 추워지니 로드가 생각났다.

로드는 갈색에 털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냥 이스라엘에 있던 길고양이다.
이름도 그냥 Road.

처음 에인 하롯에 도착했을 때는 거기가 에인 하롯인 줄 몰랐다.
사람들한테 물어 물어 어찌 됐건 도착을 했고 도착했을 때부터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에 띈 게 로드.
그날 밤 애들은 파티를 했고 나도 같이 마시다가 옆에 있는 로드를 봤다.

사람들한테 가까이 있으려 하는 그런 고양이.
다가가서 만지려고 하니 옆에서 벤자민이 소리 친다.

아까 애들이 술 먹고 걔한테 오줌 쌌어.

알았다고는 했지만 결국 만지며 같이 노려봤다.
오히려 같이 다니는 얼룩 무늬 고양이 쉐켈이 좀 더 인상이 좋았던 거 같다 처음엔.


일이 식당 일이고 점심 식사가 끝나면 문을 닫는다.
아침 일찍 나가긴 하지만 한 1시, 2시가 되면 끝나니 돌아오면 거의 대부분 내가 먼저 숙소에 온다.
숙소에 도착하면 반겨주는 건 로드 하나다.

로드는 자기 영역 밖으로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
일 가는 날 따라오다가도 자기 영역 선 안에서 딱 멈춘다.

일 끝나고 와서는 숙소와 숙소에서 쓰는 주방 건물 사이의 잔디밭에 누워서 그냥 멍하니 있다가 졸기도 하고 그런다.
배가 뜨끈해져서 일어나보면 로드도 내 배에서 자다가 깜짝 놀라서 튀어 오른다.
옆구리가 뜨끈해지면 옆구리에서 자고 있는 거고.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 방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거 때문에 일 나갈 때도 방문을 열어놓고 나가기도 했는데, 돌아와보면 로드가 침대 위에 누워 있다가 번쩍 일어나고 있다.
시끄럽게 음악을 듣고 있어도 잘 잔다. 심심하면 옆의 내 배낭을 뜯기도 하고, 내 배에 올라와서 꾹꾹 누르기도 하고. 그냥 아침에 일어나도 배 주변에 있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운다. 내 얼굴 똑바로 쳐다보고.
맨날 먹을 걸 주니까 쥐도 못 잡는다. 쉐켈은 바로 물고 가더만.


가끔 로드가 바구니 안에 들어갈 때가 있는데, 그거 진짜 귀엽다.


한 번은 동네 개들이 로드를 몰아붙였었다.
쪼그만 개는 로드도 성질대로 할퀴어대지만 큰 개가 두 마리 달려오니 그냥 나무 위로 올라간다.
지켜보는데 한참동안 안 내려와서 나무 밑에 가서 팔로 받아주는 시늉을 했더니 내 어깨로 점프한다.

오 이 기특한 자식…


로드 배가 점점 부르는데 전체적으로 살이 찌는 게 아니고 배만 불러왔다.
처음에는 내가 먹을 걸 너무 많이 줘서 그런 줄 알았는데 계속 해서 모양새를 보니 임신이다.
맨날 아빠가 도대체 누구냐 했지만 뭐 그냥 혼잣말이 되는 거고.

로드가 임신한 상태에서 나는 일을 그만 두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로드가 어떨까 걱정은 되지만 나단한테 맡겼으니. 책임감은 있는 애라 별 걱정 없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출국 때문에 맡겨둔 짐 몇 개를 찾고, 애들한테 인사도 하러 돌아오니 로드가 없다.
어디 갔냐고 했더니 지금 옥상에서 살고 있단다. 새끼도 엄청 낳았다고.
그리고 내가 간 뒤에 들어온 애는 내 방에서 사는데 계속 로드가 들어와서 별로 안 좋아한다고…

그러다가 로드가 잠깐 내려온 모양이었다.
예전처럼 다시 안을려고 하니 로드가 할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