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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고사

오늘 도서관에서 밖에 멍하니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밖을 보고 있노라니 고등학생 때 모의고사를 보던 게 떠올랐다. 18살, 19살의 그때. 맙소사 7, 8년 전이야.


내가 고등학교 때는 항상 출석 번호가 2번이었다. 이름순으로 출석 번호를 매기는데, 내가 강씨임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또 다른 강씨가, 그것도 비읍으로 시작하는 애가 꼭 한 명 한 반에 있었었다.
뭐 어쨌든, 모의고사 때는 출석 번호 순으로 책상을 바꿔 놓는데 항상 2번인 탓에 자리가 똑같았다. 창문 쪽 거의 맨 앞. 밖으로는 오륙도도 보인다. 내가 3학년 때쯤에 롯데 캐슬이 쭉쭉 올라가서 가려지고 또 다른 아파트도 막 생겼지만 머.

날씨가 좋은 날이면 햇살 맞으며 밖을 구경할 수도 있다.
모의고사 치는 날은 어째 기분이 좋다.

그래 이게 내 모의고사에 대한 기분. 모의고사는 그냥 수업 안 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오면 일단 잔다. 물론 평소에도 안 자는 건 아니지만 일단 잔다.

1교시 땡 하는 종소리가 날 때에 일어나서 컴퓨터 사인펜이랑 샤프, 지우개를 챙긴다.
간혹 1교시 전 쉬는 시간에 일어나서 주위 애들이랑 논다.


1교시는 언어영역. 가끔 애들이 1교시 끝나고 아는 지문이 나왔다고 뭐라고 하긴 하지만 난 잘 모른다.
어차피 다 낯선 지문들이라… 뭐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나름 기분은 좋은 시간이다.
언어영역이랑 외국어영역만큼은 성적이 좀 잘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매모호한 문제들은 좀 재밌는 편이다. 항상 문제에는 가장 옳은 것을 고르라고 하니까 생각할 여유가 있다. 하지만 지문을 하나도 몰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어야 된다. 마킹이 다 끝나면 대부분 종이 친다.

그래도 일단 하루 중 가장 머리를 많이 쓰는 시간이기 때문에 끝나고 나면 피곤하다.

사실 뭐 그렇지 않은가, 수업 중에는 잠 잘 오는데 쉬는 시간만 되면 지금 잠이 옴? 이러고 있는 거…
아니 생각해 보니 그래도 난 잤구나. 잠은 소중하니까.


아 뭐 헛소리고 자든 말든 2교시가 되면 난 암울해진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수리영역이다. 그나마 객관식은 좀 낫다. 문제가 뭔 소릴 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답 보면 대충 문제가 다시 보일 수도 있다. 근데 주관식은 봐도 모르니까 확률이면 다 그리고 그냥 이 정도 되겠지 하고 때려 맞추거나 한다. 지금도 공대생이지만 수학은 못 함.

절대로 시간이 부족할 리가 없기 때문에 대체로 이 시간에 마킹을 다 하고 잔다.

내 짝이 경환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경환이가 날 깨워서 밥 먹으러 간다. 아님 둘 다 그냥 자던가.
하지만 난 밥 안 먹으면 죽는 줄 알았기 때문에 자다가도 삼 시 세 끼 꼭꼭 다 챙겨 먹었다. 늦더라도.

만약 밥을 빨리 먹고 오면 황금 같은 시간이다.


잔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일어나면 앞에서 시험지나 답안지가 바로 넘어 온다.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외국어영역 시간이다.

대충 OMR 카드에 마킹을 하면 듣기가 흘러 나온다.

외국어영역은 다른 과목과 다르게 틀리면 뭔가 되게 아쉽다. 그래서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촉각이 좀 곤두서는 시간이다.
영어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거의 마킹까지 끝날 때쯤이 시험 종료 시간이다.

난 시험 문제를 절대 다시 보지 않았다. 사실 그 문제를 다시 보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 본 문젠데 질리지도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또 다른 문제로 난 그럴 시간도 없었다. 다 풀고 마킹하면 시험 시간이 끝나니까.


그 다음 과학탐구영역이다.
과학탐구영역은 물리1, 2랑 생물1은 좀 재밌다. 특히 물리1, 2에서 역학 부분만 좀 많이 재밌다.
파장 이런 부분은 아 좀 비호감.

화학1은 내가 선택하긴 했지만 정말 다른 거 할 게 없어서 선택했다.
생물2는 당시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복잡해 보였고, 지구과학은 하기 싫었으며, 그나마 화학1은 그래도 이때까지 수업 좀 들었잖아? 하면서 선택을 했지만 나중에 재수할 때까지 화학은 그냥… 뭐 그랬다. 들어도 뭔 소린지 몰랐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기억 나는 건 칼카나마알아철? 니주납수구수은백금? 화신 쌤이 앞에서 통통 튀면서 이런 말 했던 것만 기억이…

아 맞다 니주구리.

어쨌든 과학탐구영역도 아는 것만 풀면 시간이 어엄청나게 많이 남았기 때문에, 다 풀고 또 잔다.


이제 자고 일어나면 개운할 정도.
모의고사 치는 날에는 야자가 없다. 어차피 야자 한다고 해도 튀지만 찝찝하지도 않고 기분 좋은 날이다.


기봉이랑 집에 가는 길에 책방 들려서 책 좀 보다가 책 빌려와서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자고.
가끔은 한 번 더 가서 빌려 보기도 하고.


참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