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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이스라엘

눈 왔다.



인터넷이라는 게 있는 나는 참 고맙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리 좋지는 않구나 싶다.

자기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서 사는 거 같은데, 뭐,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 인터넷이란 게 그게 안 되잖아.

내가 모르는 사람도 있는 거고, 그 사람이 나한테 좋은 소리만 해줄 수도 없는 거고.
내가 생각하던 2000년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딜 갔다 와서 좋았다는 말은 거길 전부 알지 못 해서가 아닐까.

[#M_그래도 좋지. 좋았던 건 사실이니까.|그래도 좋지. 좋았던 건 사실이니까.| “어 야 복학했네? 니 이라크 갔었다고 했잖아.”
“이라크가 아니고 이스라엘…”

“어 니 저번에 이집트…”
“이집트가 아니고 이스라엘…”

“어 야 아랍…”
“이스라엘!”

하긴 뭐 우리나라도 나가면 똑같지.



그러고 보니 이스라엘 여행하던 게 생각나네.
출국 한 달 남기고 일 그만 두고, 매니저한테 열쇠 고리 선물 받고, 애들은 나간다고 파티 해주고.

어쨌든 출발했건만 예루살렘 쪽 아랍 지구 빼고는 숙소고 뭐고 너무 비싸기에,
마을 보이면 거기 집 앞 잔디밭에서 누워 자고, 자다보면 집에서 사람이 나와서 그냥 집에서 자라 그러고.

쩝, 어떻게 그랬을까 싶네.



밤에 아풀라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 들어가는 버스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내 나이만한 여자가 나한테 다가오더니 가방 두 개만 좀 맡아 달란다. 자기가 음료수 좀 사올려고 하는데 무거워서란다.
그 때만 해도 이제 이스라엘에 쩔어 있을 때라, 테러니 이런 거에 익숙해져서 마음 속으로는 ‘안 돼! 이거 폭탄일 수도 있어!’ 하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냥 받았다. 난 참 거절 이런 거 못 하는 거 같아.

받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이거 뭐야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것보다 나만 동양인이잖아.
왜 나한테 맡기는 거지.

주위 군인들 시선도 좀 느껴지고, 하아 난감하네.

그때 잠시 만약에 한국에서 똑같은 상황에 내가 음료수 사러 가고, 어떤 머리 노란 외국인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짐을 맡길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역시 아니라, 아 뭐야 뭐 이리 복잡해.
온갖 상상을 하며 가방만 쳐다 보고 있으니 그 여자가 다시 돌아왔다. 두 손에 소다를 쥔 채.

마침 목이 말라서 맛있게 먹었다.

…좋은 사람이었구나.



갈릴리 쪽 돌 때, 가버나움에서 나오는 도중에 뭔가 허전해서 목을 만져주니 목걸이가 없다.
지금 걸어 나온지 두 시간 정도 되나…

한 시간 반 정도 다시 걸어서 돌아가보니, 목걸이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있다.

다행이다.



요즘도 가끔씩 이스라엘에서의 일이 생각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벌렁 하거나, 고맙거나, 그냥 신나는 그런 일._M#]

Too drunk to dance.

이제는 어언 2년 전, 나는 Ein Harod에서 줄창 일하고 있었고,
일이 끝난 후 로드와 들판에서의 낮잠과 밤에 애들끼리 모여 술 먹고 노는 게 낙이었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피곤했다.

한 8시쯤 됐나.
로드는 내 침대 위에서 내 배를 꾹꾹 누르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로드랑 놀다가 잤다.


Wake up, Soo!


뭐… 뭔


Wake up, Soo!


뭐고 뭐.
번쩍 눈이 떠졌다.

그러자 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건 나단의 빨간 얼굴이다.
뭐고 이놈이.


Go drink!


이런.
멍한 상태로 대충 둘러 보니 나단은 내 침대 위에서 내 귀에다가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있고,
방문 쪽에는 데이아랑 큰 형, 작은 형, 제희 형, 나미 누나,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A라고 해두자. 이름이 A로 시작했던 건 분명하다. A가 술병 하나씩 들고 실실 웃고 있다.

난 평소에 로드가 드나들 수 있게 방문을 열어 놓고 다닌다.
안 그래도 이 뜨거운 나라 통풍도 되고 좋지 머.

어쨌든 그렇게 열어둔 문이 오늘은 빛을 발했다.
어차피 닫았다고 해봤자 이놈들 지금 상태로 봐서는 문을 부시고 들어올 꺼 같긴 하다만.


어쨌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단은 날 끄집어 일으켜 세워 놓고는 양 손에다가 병을 하나씩 들려주고 있었다.
한쪽은 포도주, 한쪽은 양주인가…

바깥으로 밀려나가 바깥 공기를 마시니 잠이 좀 깬다.
나가서 다시 보니 조조도 있다.

조조는 한참 취해 있다.
나한테 다시 자기 이름 좀 제대로 불러 보라고 하더니, 결국 포기하고 조조라고 부르라고 한다.


We gonna go dance. Drink! We need more energy!


누가 없는데? 아 맞다. 펠릭스는 이제 없지.
윌슨 형도 없다. 윌슨 형은 이런 자리를 좀 싫어한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데이아와 조조가 팔장을 끼고 마을 밑으로 스텝을 밟으며 뛰어 내려간다.
나머지는 그 뒤를 따라 걸어간다.

데이아가 뛰는 게 너무 웃기다. 아니 귀엽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꺼 같다.
옆에서 작은 형이 한 마디 한다.


펠릭스가 없으니 이 모양이지…


그런가? 하며 저 둘이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실컷 웃었다.


데이아와 조조만 따라 가다가 보니 이놈들이 진짜 취했나 목장이 클럽이라며 우겨댄다.
하는 수 없이 나단이 다시 끌고 간 곳은 나무 공장이었다.

나단도 취했나?

들어가보니 나무 공장이 아니었다.
나무들은 어디론가 다 치워버리고, 귀청이 터질 듯한 음악에, 스테이지도 있고, 정신 없는 조명에, 한 쪽에는 바가 있는 클럽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뀌어 있었다 라고는 했지만 허름 그 자체였다.

더 웃긴 건, 바에서 검은 푹 파진 드레스를 입고 서빙을 하는 사람은 타마르다.


맙소사.


타마르가 칵테일이랍시고 플라스틱 컵에 뭔가를 담아 준다.
환타에다가 보드카를 왕창 섞은 맛이다.

콜라 섞은 거보다 더 하잖아 이거…

어느새 큰 형과 작은 형, 데이아와 조조는 조명 한복판에서 이미 춤을 추고 있다.
조조가 부르고, 난 멍하게 있고, 다시 큰 형이 재촉한다.


뭐 어떻게 춤을 췄는 지는 모르겠지만, 올드 펍이랑은 영 다른 느낌이다.
공장이 갑자기 클럽으로 바뀌고 마을 사람들이 어디서 알고 왔는지 이름 모를 춤을 마구 추고 있다.

대충 추다가 조조가 완전히 춤에 정신이 팔리자 나는 구석으로 가서 타마르가 준 술을 홀짝거렸다.


누가 스윽 다가온다.
아니 이런 클럽에도 이런 놈들이 있는 거야? 나 참.


You wanna drug?


대답이야 뻔하지. 물리치고 담배 하나 문다.
그때서야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정말 웃긴다. 이런 것도 재밌구나.

스테이지 쪽을 보니 조조는 나미 누나하테 완전히 꽂힌 것 같다.
나미 누나 앞에서 춤을 추며 떠날 줄을 모른다.
저걸 어쩌나.


사실 어떻게 됐는 지 그 뒤로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뭐 어때, 재밌는데. 생각 나면 계속 쓸께.

a mouthful of water

갈릴리 호수 주변을 여행 중, 가버나움, 베드로 교회 등 몇 교회를 돌아다니다가 하이파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타러 한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섰다.

하이파에서 가버나움까지 걸어갔던 나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헉헉대고 있었다.
가버나움과 하이파 사이는 갈릴리 호수를 제외하고는 말 그대로 도로 밖에 없다. 한 시간이고 나는 혼자 버스를 기다리며 히치 하이킹도 시도해봤지만 그 날따라 좀처럼 차가 잘 잡히질 않았다.
그러면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데, 가버나움 쪽에서 나온 한 차에서 한 여자가 정류장 근처에서 내렸다. 히치 하이킹을 해서 버스 정류장까지 탄 모양이다. 차는 반대쪽으로 간다.

그 여자는 그대로 걸어서 나 혼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왔다.
조그만 금발의 여자다. 먼저 히브리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Sorry, I’m not Israeli.”

웃으며 다시 묻는다.

“You’re waiting for something bus, right?”
“Yeah, but any bus does not have come here about… for an hour.”
“Really? hm…”

그리고 그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며 이것저것 만진다.

“I can check the time table of the bus coming here.”
“Wow, thank you.”

한참 만져 보더니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Maybe the bus you’re waiting for is already gone, and is not coming anymore.”
“Ah.”

아, 멍해진다.
안 그래도 목 마르고 걸어갈 힘도 없는데, 올 때는 어떻게 왔던 건지 모르겠다.
여자가 이것저것 물어본다. 아무래도 동양인은 좀 낯선 모양이다.
나는 한국인이고 이스라엘에 여행하러 왔다는 둥, 그 여자도 여기 놀러 왔는데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이라는 둥,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얘기가 끊겼다.

여자가 매고 있던 가방을 연다.
물이랑 샐러드가 있다. 내 눈이 돌아간다.
그래도 꾹 참고 가만히 있었다.
여자는 나를 힐끗 보더니 내가 헐떡대는 걸 본 눈치다.

“Do you want some?”

냅따 들이킬까 참을까 고민하며 대답을 못 하는 나에게 그 여자는 웃으며 그냥 물을 나에게 준다.

“Thank you.”

목에다가 몇 모금 들이킨다.
아 살만하다. 이제 내 얼굴에 생기가 돈다.

그 여자는 웃으며 꺼낸 샐러드를 먹었다.

샐러드를 다 먹을 때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하나를 꺼냈다.

“Can I smoke right here?”
“Sure.”
“Are you a smoker?”
“No-oh.”

몇 모금 빨고 나니 살만하다.
그 여자가 샐러드를 다 먹고 가방에 넣고 나니 잠시 후에 택시 하나가 정류장 옆에 선다.
또 히브리어다.

여자가 듣더니 나보고 좀 가까이 가서 얘기 해보란다. 티베리아스 가는 택시란다.

“Tiberias!”

택시 기사가 외친다. 안을 보니 아랍계 남자, 여자가 동승하고 있다.

“How much is it?”
“10 shekel!”

오우, 티베리아스 버스 터미널에서 부르던 택시 값보다 훨씬 싸다.
냉큼 정류장으로 돌아가서는 짐을 들며 여자에게 말한다.

“I’m going now.”
“OK, bye.”
“Bye.”

그냥 그 때 마셨던 그 물이 오늘 밤에 좀 아쉽다.
또 아쉬운 건 그 고마운 여자의 사진이 있던 필름이 없다는 것.